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논문 지도교수 부탁하기

뿌부부 2023. 3. 2.
반응형

학교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석사 1년차, 2년차 모두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그래서 입학 전 자기 연구분야의 교수와 논의 한 후 입학허가를 받는 경우도 있고, 입학 후 학과 교수에게 연락하여 논문지도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학교는 후자였는데, 첫 수업날부터 프로그램 책임교수가 각자 생각 중인 논문 주제에 대해 말해보라고 시켰다. 엄청 당황했다. 입학 전에 연구계획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계획에 불과한거라 실제로 8개월도 안되는 짧은 시간 내에 연구가 가능한 주제는 아니었다.

 

교육시스템이 다르기도 하려니와, 기존에 논문을 써본 적이 없는 나는 '논문'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감이 없었다. 그런데 논문 주제를 정하라니. 걷지도 못하는 애한테 장대멀리뛰기를 하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배운 게 없는 데 어떻게 논문 주제를 정하나요.

 

어찌어찌 조금이나마 실현 가능해 보이는 주제를 가지고 한 페이지짜리 연구계획서를 써 여러 교수들에게 상담요청을 했다. 이미 논문을 써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이 연구주제 잡는 게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특히, 두루뭉술한 연구주제를 좁혀가는 것과 이 연구를 내가 주어진 기간 안에 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서 한 페이지짜리 연구계획서를 쓰는데 한달 가까이 걸렸다. 그 덕분에 교수들에게 메일을 돌릴 때 쯤엔 대부분 지도학생이 꽉 찬 상태였다. 

 

한참을 이 교수 저 교수 연락을 돌리다가 겨우 교수 두 명과 첫 면담을 하게 되었다. 면담을 잡고 나서도 걱정이었다. 한국어로 해도 논리적으로 말할까 말까 하는데, 불어로 논문주제에 대해 교수와 논해야 하다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별별 후기를 다 찾아봤다. 프랑스 학생이 자기 지도교수와의 첫 면담후기를 써놓은 것까지 찾아보고 나서야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그 프랑스 학생도 한참을 더듬더듬 거렸다더라)

 

첫 교수와의 면담은 다행히도 교수가 혼자서 내 논문주제의 문제점에 대해 실컷 지적하다가 끝나서 당황할 일은 적었다. 문제는 두번째 교수와의 면담이었다. 두번째 교수는 나를 옆에 앉혀두고 내 계획서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짚어가면서 내 생각을 물어봤다. 말도 어눌하기도 하려니와 질문도 못 알아들어서 엉뚱한 답변을 하면서 장장 한시간 동안 면담을 진행했다. (실은 말보다 교수가 한숨을 쉬는 시간이 더 길었다..) 내 생애 그렇게 긴 한시간은 처음이었다.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면담을 끝마치면서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예전에 지도하던 학생도 처음에는 불어를 아주 못했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잘하게 되었다며, 너도 그렇게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고. 별 것 아닌 그 말이 왜 그렇게 자신감을 주던지. 연구동을 나서던 순간 바람에 식는 땀이 참 시원했다. 결국 두번째 교수가 논문지도를 담당해주기로 했다.

 

한국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떨고 긴장할 일도 아니었을텐데도, 여기서는 이런 일 하나하나가 넘어야 할 산이자 보스몹 퀘스트처럼 느껴진다. 이런 경험이 나중에 자산이 되려나? 아니면 유학생활 중에 있었던 웃긴 에피소드 정도로 기억되는 시간이 올까? 모르겠다. 그냥 일단 잡아먹히지만 말자. 언어도 언어지만 논문쓰느라 눈물콧물 흘리며 고생하는 이 땅의 모든 대학원생들 화이팅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