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고민 끝에 외국생활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게 많았다. 부모님을 잘 설득해야 되는 데 반대하시면 어쩌나, 문제 없이 비자를 받을 수는 있을까, 출국 전에 갑자기 큰 문제가 생기거나 하지 않겠지, 가서 잘 적응해서 살 수 있을까,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실패해서 돌아오면 어쩌지, 돌아와서 결국 일자리도 못 찾고 돈과 시간만 까먹은 거면 어쩌나. 밤을 새도 모자랄 만큼 불안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래서 불안을 떨치기 위해서 매일 책방에 들렀다. 가까운 주변에 나와 같은 상황을 겪어본 사람들이 없어서 조언을 구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쓴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워홀이든 세계여행이든 삶의 방향을 바꿔본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무슨 책이든 읽었다. 너무 고마웠다. 마치 어릴 적 읽던 동화책 같았다.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그 책들이 정말로 희망이랑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도와줬다. 나도 꼭 그런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심적으로 도움 받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길 바라며.
그리고 감정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불안해서 감정이 바닥을 치는 날에는 그냥 그러려니 놔뒀고, 또 갑자기 희망이 샘솟으면 신나게 즐겼다. 동생은 내가 조울증 같다고 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맨 먼저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인지 나쁜 날인지 물어봤다. 좋은 날이라고 방방 뛰면 미쳤냐고 욕했다. 나쁜 날이라고 하면 일단 단 걸 먹인 후 노래방에 끌고 갔다.
브런치 글들도 너무 많은 도움이 됐다. 자신의 불안함을 고백하는 글들이 고마웠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불안을 극복한 이야기를 공유해주는 것도 너무 고마웠다.
그래도 잠이 안 오는 날에는 글을 썼다. 내가 왜 이토록 불안해 하는지, 지금 느끼는 불안한 감정이 어떤 모습인지 의식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썼다. 글을 써서 불안한 감정을 직면하는 게 사실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왜 불안해하는 지를 눈으로 마주한다 한들 불안감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뭔가 털어놔야 조금이라도 잠이 들 수 있었다.
머리로 잘 그려지지 않는 미래를 자꾸 예측하려 하다 보니, 불안함이 계속해서 커졌다. 가서 어떤 배움을 얻게 될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결과가 좋을 지, 나쁠 지, 향후 내 진로와 직업은 어떻게 될 것인지 등등 지금으로선 정해진 게 없는 문제들에 집착하다 보니 내가 결국에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불안했다.
먼저 살아 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사는 게 불안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가장 불안함이 덜한 검증된 삶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살 능력치가 안돼서 불안함을 잔뜩 짊어지고 도망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억지로 불안을 극복하기에 나는 너무 태생부터 걱정몬인지라 이를 완전히 제거할 방법은 아무래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불안함도 인정하기로 했고, 도망치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은 ‘어쩔 수 없지 뭐’ 하는 심정으로 내 부족함을 안고 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도, 가고 나서도 난 계속해서 잡히지 않는 미래에 불안해 하겠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다. 불안을 떨칠 수 없다면 그냥 잘 다독인 다음 멱살을(?) 잡아 끌고 가는 수밖에. 어떻게 해서든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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