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비혼주의에 대해

뿌부부 202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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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외국살이를 시작한 친구들이 한국에 잠깐 들어올 때면 꼭 시간을 내서 술 한잔씩 하곤 했다. 동경 때문이었는지 궁금한 것도 많았었고, 그들의 변한 생각도 이것저것 듣고 싶었었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오를 때쯤이면 빠지지 않고 연애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까지 이어지곤 했다. 신기하게 결혼 주제만 나오면 유학 나간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요새 한국 친구들 만나면 왜 이렇게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지 이해가 잘 안돼"

 

 

나 또한 그 요새 한국 친구들 중 한 명이었던 터라 그런 말을 들으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한숨부터 나왔다. 넌 외국에서 사니까 요즘 한국 돌아가는 꼴을 모르지, 현실적으로 돈이 있어야 결혼을 하지, 다 갖춰놓고 시작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 근데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이 안 나와, 여자는 더 그래, 손해야, 결혼해서 임신하면 바로 경력단절인 세상이야. 비혼주의가 마냥 농담이 아니라고.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시니컬했던 내 생각이 요새는 참 많이 달라졌다. 

 

그렇게 한국의 분위기에 대해 의문스러워했던 내 친구들은 아마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로워봤지 않았을까 싶다. 외롭고 고독해봐서 인생의 반려자가 얼마만큼 큰 의미인지 직감적으로 알게 된 걸지도 모른다.  가치가 경제적 부담, 직업적 손해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도, 상식이 전혀 다른 세상에서 자기와 잘 맞는 짝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몸서리치게 느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결혼은, 어떻게 보면 참 쉬운 일이고 또 어떻게 보면 끝도 없이 어려운 일이다. 옛날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렇게 하신 것처럼 맨주먹만 가지고 할 수도 있는가 하면, 이것저것 다 재고 따지면서 마냥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에 대한 기준이 천차만별인 만큼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 비혼을 지향하는 이유도 뜯어보면 제각각일 것이다. 결혼이라는 시스템이 싫을 수도 있고,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싫을 수도 있고, 한 사람을 평생 만날 자신이 없어서 일 수도 있고, 자신의 커리어가 깨지는 게 싫어서 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제 결혼을 둘러싼 모든 의문들을 떠올려 볼 때, 꼭 한 가지 덧붙여 생각해보곤 한다.

 

과연 내가 앞으로 살면서 마음이 맞는 반려자보다 더 중요한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상대에 대해서 면면히 잘 모르는 상태에서 쫓기듯 결혼하는 것이 종종 불행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 채 혼자서도 평생 살 수 있을 거라 쉬이 짐작해버리는 것 역시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의 가치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늘 옆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쉽게 잊고 지내듯이.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결혼이란 결국엔 사랑을 이야기해야 하는 문제구나 싶다.

 

결혼을 둘러싼 많은 조건들, 결혼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들, 비혼주의를 지향하는 이유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여차하면 계산도 가능하다. 그러나 '인생의 반려자'가 가진 가치는 한참 주관적이고 설명도 어려우며 계산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뭉뚱그려 사랑으로밖에 표현이 안된다. 계산도 안되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그 가치는 잘 염두에 두지 않으면 금방 흐릿흐릿 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을 때는 특히나 더 잘 잊고 지내게 된다.

그러나 상황은 항상 변할 테고, 언젠가는 주위에 남은 사람이 손꼽을 정도로 적어질 때면 한결같이 내 옆에 있는 반려자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아프도록 깨닫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먼 타지에서 아무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지내 본 유학생 친구들은 그렇게 먼저 아프게 깨달았던 것 같다.

 

 

요새는 사랑이 눈과 귀를 멀게 아는 게 아니라, 현실이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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