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낙관주의를 세우기

뿌부부 202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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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로 떠나기 바로 전날, 마지막으로 원고를 보낸 뉴욕의 출판사로부터 내 소설을 출간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절망에 갇혀 있었고, 중대한 위기국면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었다. 그 당시 내 나이 45세, 중년이 된 지 5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삶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고,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인생에서 배우게 되는 여러 가지 교훈들 중 비로소 한 가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망, 낙심, 비극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 절망, 낙심, 비극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커다란 시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고 깊게 트인다."

 

- 빅 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

 

 

 

한국으로 돌아갈 짐 정리를 했다. 한국에서 프랑스로 처음 오던 그때보다 오히려 짐이 더 줄어들었다. 가능한 한 버리고 줄였다. 석사를 하면서 주섬주섬 모았던 자료들도 다 버렸다. 더글러스 케네디의 에세이집 한 권을 남기고는 좋아서 이 먼 곳까지 가져왔던 많은 책들도 다 버렸다.

 

그의 에세이집에는 자신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줬던 스릴러 장르를 벗어나면서부터 숱하게 맞이한 실패와 거절, 불행했던 유년기, 15년을 이어온 결혼생활의 파탄, 자폐를 겪는 아들, 그 모든 절망과 치부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처음 그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내 나이가 25살이었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살면서 이 책이 언젠가 필요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었다. 사람에게 직관이란 게 정말 있는 건가. 그 뒤로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책이 정말로 절실해졌다. 

 

박사 펀딩에 실패하고, 박사를 이어갈 방도가 없어진 나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괴로웠다.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며칠을 내리 잠만 잤다. 하루에 16시간 이상 잠을 잤다. 우울증의 다른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눈을 뜨고 싶지도 않았고, 눈을 떠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설령 할 일이 있더라도 죽어도 하기 싫었다. 

 

그러다 이제 언제 프랑스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는 데, 마지막으로 가족들 선물은 사야겠다 싶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1년 넘도록 코로나 때문에 썰렁하던 파리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생기로 넘쳐났다. 그 한가운데 서있으니 이상하게 알 수 없는 의지가 생겨났다. 그래서 오며 가며 마주했던 작은 카페에 앉아, 마지막 남은 책을 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오던 외교관 시험에서 연거푸 낙방하고 결국 그 꿈을 포기했을 때,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었다. 원하던 것은 노력이든, 주변의 도움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어냈었던 내가 처음으로 겪은 실패였다. 내 실력이 여기까지구나를 깨끗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실패.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실패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때까지 원하는 건 기어이 손에 넣었던 나는 인생에 다소 자신만만했었다. 나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풀리는 거라 굳게 믿었다. 간절했던 무언가를 실패한 적도, 포기해 본 적도 없었으면서 마냥 긍정적이기만 했던 당시의 나는 낙관적 인간이라기보다 순진한 사람에 더 가까웠다. 그렇기에 첫 실패에 홍역을 치르며 큰 절망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니 어떻게든 상처는 무뎌지고, 머리를 뒤엎던 먹구름도 슬슬 걷히는 때가 왔다. 나는 절망감을 털어내고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꿈을 탐색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기의 깊은 탐색이 유학의 연으로까지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그 때의 실패는 진짜 낙관주의를 세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였다. 낙심과 패배감, 자기연민의 경험을 겪고도 다시 회복하여 일어나는 힘을 기르기 위한 과정이었다.

 

평생을 가난 속에 살았던 고흐는 '수레바퀴 아래서는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 그런대로 견딜만하지 않을까' 라며 동생 테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우리는 그의 인생이 고통스러웠으리라 추측하지만, 나는 수레바퀴의 아래에서도 늘 올라갈 일을 생각하며 살았던 고흐야말로 진정한 낙관주의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생각한다. 그의 낙관주의는 자기연민과 비관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서 죽기 직전까지 그림을 그리는 힘에 있다. 

 

고통스럽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실패와 절망을 딛고도 다시 시작하는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자기연민에 빠져있을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마다 몇 번이고 자신을 살리는 결정을 하는 게 우리가 후천적으로 키울 수 있는 낙관주의적 사고다. 

 

이번 실패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예전처럼 큰 교훈을 주는 경험일 수도 있고, 별 의미 없이 지나가는 이벤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실패 역시, 내 인생의 큰 틀에 있어서 필요한 순간에 겪는 필요한 실패였으리라 그렇게 믿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이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해석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나의 결정들이 차곡히 쌓여 언젠가 어느 때라도 나를 다시 일으켜주는 진짜 낙관주의를 만들어주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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