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실패에 박수를 친다

뿌부부 202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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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무한도전 팀이 스포츠 중계를 하는 편을 돌려봤다. 남성부 체조 경기에서 러시아 선수가 실수로 넘어져서 크게 다칠 뻔했다. 선수는 다시 털고 일어나서 원래 하려던 동작을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마무리했다. 놀랍게도 베이징 주경기장을 채운 관중석에서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던 자국 선수에게 쏟아진 박수보다 더 큰 박수가 쏟아졌다. 해설을 보던 캐스터들도, 유재석 MC도 선수가 다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장면을 보고 너무 다행이라고, 이게 바로 스포츠 정신이라고 치하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의 시간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 역시 그 선수가 다치지 않기를 바랐고, 다시 일어나서 끝을 내는 모습에 혼자 박수를 쳤다. 비록 그 선수는 순위권 안에 들지 못했지만, 시상식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중계석에서는 그 선수의 멋진 태도를 기리는 멘트가 나왔다.

 

실패를 하면 세상이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내가 컨트롤할 수 없었던 그런 사정에 냉담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최근까지도 그랬었다. 돌이켜보니 그런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결론이 중요하다고 봤다. 과정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던가.

 

나를 마음으로 믿어주셨던 가족들은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고생 많았다, 그 먼 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하시며 나 대신 눈물을 흘려주셨고, 내 여린 동생은 괜찮냐며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 버는 돈을 떼어 내 통장으로 100만원을 성큼 부쳐줬다. 나를 너무도 잘 이해해주는 내 친구는 자신이 가우디를 평생 후원해줬던 구엘 같은 친구가 되어주겠으니 걱정 말라했다. 내가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왔던 남자친구는 이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없었을 거라며 얼마나 사람이 크게 쓰이려고 이런 시련이 있을까 하며 나의 실패에도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지지해주었다.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노력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옆에서 그냥 지켜봐 준 사람들조차 나의 지난 세월에 기꺼이 박수를 쳐주는 데 정작 나는 왜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했을까. 나 역시 올림픽까지 지난 4년의 세월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준비한 바를 끝냈던 그 러시아 선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지 않았나.

 

결과가 중요한 세상에서 살면 나는 계속 결과를 추구해야 하고, 과정이 중요한 세상에서 살면 나는 과정을 다듬으며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누가 대신 결정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다만 자신이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였다. 나는 그동안 결과의 세상에서 살았다. 그래서 실패하면 마음이 찢어지게 슬펐고,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결국 자기위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세상에서 살던 나에게 내 노력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과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결과가 없으면 노력의 의미조차 퇴색시켜버렸다. 

 

베이징 주경기장에서 순위에도 들지 못한 그 러시아 선수를 향해 1등을 달리던 자국 선수보다 더 큰 박수가 나오는 걸 들으면서 눈물이 뚝뚝 났다. 내가 틀렸구나. '현실이 원래 그렇다'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나의 실패를 더 드라마틱하게 만든 거였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세상은 섬세하다. 섬세하게 본질을 파악한다. 타인조차 나의 과정에 박수를 쳐주는 데, 정작 24시간을 같이 사는 나는 나의 노력을 깎아내리느라 바빴구나. 내가 마음이 아팠겠다. 그간 고생한 나를 좀 더 위로해줄 걸. 

 

다칠 뻔할 만큼 크게 넘어졌어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끝까지 자기 일을 해낸 러시아 선수처럼, 그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과 지난 4년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낸 관중들처럼, 나도 나의 지난 시간과 노력을 멋지게 인정해주기로 했다. 

 

나의 실패에 박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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