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했던 모든 박사과정 펀딩에서 떨어졌다.
나름 나이가 먹었다고, 20대 중반에 겪었던 크고 작은 실패들보다 덜 슬프고, 재빨리 이겨내는 것 같다.
거짓말이다. 이겨낸 척 한다. 나이가 먹어서 괜찮은 척 자신을 속이는 기술만 늘어난 것 같다. 사실은 하나도 안 괜찮다. 건드리면 눈물이 뚝뚝 나는 상처가 하나 또 생겨버렸다. 괜히 시도를 했다. 괜히 시도를 해서 또 나 스스로에게 상처만 주는 일을 만들었구나. 그런 맥빠지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다.
최선을 다해도 안되는 일을 받아들이기란 정말 고통스럽다. 그저 괜찮은 척 덮어두고 살 뿐이지,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결국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로 들린다.
어릴 적부터 늘 '최선을 다하면 언젠간 된다'라고 배웠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해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조건도 좋았다.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가족이 빚더미에 올라서거나 그런 힘든 상황도 없었다. 나만 잘하면 됐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래도 실패했다. 좋은 조건에서 내 노력을 다했는데도 실패했으니, 남은 건 내 실력 탓을 할 수 밖에 없다. 그게 그렇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실패에 익숙해지기가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 실패를 많이 해보면 거기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냥 마음 편하라고 하는 위로에 불과한 것 같다. 100군데 도전해서 떨어지면, 100군데 만큼 아프고 힘들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다할수록 실패 했을 때 더 힘들다. 차라리 최선을 다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능력의 한계가 여기까지구나라며 자존감까지 깎아먹을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긍정하고, 나의 부족한 점을 개선해서, 실패를 발판 삼아 결국에는 성공했다, 라는 결론까지 참아내는 과정이 너무 버겁고 힘들다. 서른이 넘은 이 나이가 되도록, 간절히 원하고 간절히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음을, 그리고 그런 실패를 어떻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지 아무도 알려준 적도, 배운 적도 없다.
남자친구는 나보고 이상주의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생각이 있다고 했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상황이 있고, 그런 상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한다고. 맞다. 나는 늘 이상적이다. 그래서 그 이상적인 상황을 이루어내려고 많이 노력한다. 근데 그게 진짜 너무 버거운 일이었을까. 내가 내 노력으로도 절대 이룰 수 없는 천재적인 일에 도전한 걸까. 지능이 딸리는 걸까. 그럼 나는 도대체 뭘 얼마나 더 잘하고 더 간절히 원하고 더 열심히해서 극복해야 하나.
노력을 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노력을 더 기울이면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무언가가 되고, 안되고에는 '노력'과 '간절함'이 가장 크게 적용한다고 믿는다. 그 절대적인 노력이라는 걸, 그 절대적인 간절함이라는 걸 도대체 뭘로 증명할 건가.
결과적으로 실패 이후의 삶은 꽤나 차갑다. 과정에서 내가 들인 노력은 점점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알게 모르게 성공한 경우와 비교를 하며 나의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꾸역꾸역 채워 넣어야 하는 그런 시점에 도달한다. 그 시점에 다가가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는 지 모른다. 다들 그래도 괜찮다 이겨낼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힘들다. 근데 또 그래야 할 것만 같다. 얼른 털고 일어나야 할 것만 같다. 괜찮다고 웃으면서 그 실패의 이야기를 하기까지 혼자 흘려야하는 눈물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실패를 겪고 싶지 않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도전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실패하는 일도 많아진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없는 안정적인 삶이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마음이 찢어지게 실패할 일도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되도록이면 실패를 겪지 않는 삶이 좋다. 멋진 미사여구로 아무리 포장해봐도, 스스로 납득할만큼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일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일은 힘들고, 괴롭고, 지지부진하다.
이번엔 참으로 힘들었다. 이제 더 나빠질 일이 없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또 더 나쁜 일이 생기고, 이제 더 나쁜 일은 없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또 더 나쁜 일이 생기고. 그렇게 바닥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또 더 바닥으로 내려가야 하는 경험을 몇 달 간 지속적으로 겪으면서 심신이 참 많이 지쳤다. 실패가 지긋지긋하다.
언제쯤, 실패에도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다시 도전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어라 열심히 했는데 안됐네 뭔가 내 능력말고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말아버리는 그런 대범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노력과 간절함이 성패와 전혀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고, 그렇게 털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오면 좋겠다. 근데 내가 아는 나는 아마 평생 살아도 그렇게 되기 굉장히 힘들거다. 고집도 있고, 그만큼 열심히 하기도 하고, 또 여전히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는 일은 언젠간 된다고 믿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나는 아마 평생을 또 도전하고, 실패하고, 상처받고, 그리고 또 어렵사리 이겨내서 도전하고 또 실패하는 그런 삶을 살 사람이다.
나의 성공적인 석사 졸업이 내 유학기의 기승전결을 깔끔하게 마무리 해 줄 멋진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유학기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따뜻한 결론은 책을 쓸 때나 가능한 것 같다. 사는 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독자들에게 나름의 성공적인 유학을 했습니다고 말한 지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내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
이 롤러코스터 같은 삶 자체를 즐기지 못한다면 견뎌낼 방법이 없다. 근데 나는 아직 그 낙차를 덤덤하게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못 된다. 몸의 통증과도 같다. 마음의 통증 역시 매번 아플 때마다 새롭게 아프다. 결코 많이 겪었다고해서 아픈게 덜 아프게 되지 않는다. 몸이 아플 때 우리 스스로, 괜찮아 의지로 극복해낼 수 있어 라고 말하지 않듯, 마음이 아플 때에 역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시간을 주자. 눈물을 또 많이 흘려서 언젠가 나 이런 상처가 있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게 놔두자. 인생이 죽음 직전까지는 결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함부로 결론 지을 수 없는 것이라면, 실패하는 이 과정도 두 눈 똑바로 뜨고 받아들일 수 있게 시간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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