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면서 그 나라 언어를 못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겹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없고 늘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어쩌다 혼자 일 처리를 하게 되면 부족한 언어실력 때문에 면박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상대가 날 배려해 천천히 이야기해준다고 해도 못 알아 듣는 경우가 태반이다. 면박 당하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경우는 후자다. 내 부족함에 대한 확인사살 같은 거랄까.
머리 속에는 하고 싶은 말들이 둥둥 떠다니는 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몇 개 없다. 하루는 벙어리가 된 기분이고, 하루는 귀머거리가 된 기분이다.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실은 이런 언어문제보다 더 극복이 어려운 것은 외로움을 이겨내는 일이다.
나는 혈혈단신으로 외국생활에 뛰어든 만렙 용자님들과 달리, 현지에서 도와주고 의지할 사람이 있었다. 이 낯선 곳에서 단 한 명이라도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행운이자 감사한 사실이다. 그래서 감히 내가 인간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 할 자격은 못되나, 외국생활에 있어서 어쩌면 언어보다도 더 큰 부분이기에 꼭 다뤄야 할 것 같았다.
의지할 사람이 있던 나조차도 처음에는 내 인간관계가 오롯이 한 사람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의기소침했었다. 한 사람을 빼고는 이 곳에서 만날 사람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도 전혀 없다는 게 나를 점점 작게 만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을만큼 배부른 투정이지만 어쨌든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외로움이었기에, 스스로가 점점 더 의미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한 나를 보면, 이 사회에서 나는 투명인간 같았다.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상호작용 속에서 여러 대상에게 의존하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 동료들과 동네 주민들까지도 다 내 존재를 확인해주는 사람들이었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혼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찌 그렇게 강건할 수 있었을까. 한국에서도 물론 외로운 때가 있다. 사람에 둘러 쌓여있어도 외로울 때가 있고, 만나서 대화를 해도 외로울 때가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이방인이 겪는 외로움은 그보다 더 차가운 것 같다.
비상연락망에 적을 번호가 없어 한참을 망설였다는 유학생 친구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이 도시에 그 누구도 나를 위해 달려와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외로움을 넘어 차라리 차가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가진 언어가 부족하여 혼자서 그 차가움을 견뎌냈을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잘 써내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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