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이럴거면 뭐하러 외국에 나왔을까

뿌부부 202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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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온 지 한 달이 넘었다.

 

내 사고의 틀은 한국에서 가졌던 그 상태에서 조금도 변함이 없다. 변함없이 주변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깎아 내린다. 이역만리 먼 타국에서조차. 대단한 꾸준함이다.

 

밥벌이에 대한 고민도 여전히 나를 괴롭게 한다. 문득문득 이래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이럴거면 뭐하러 외국에 나왔을까. 환경만 달라졌지, 나는 사고가 넓어지고 유연해지기는커녕 더욱 바보가 돼 가고 있는 것만 같다.

 

프랑스 시스템은 한국과 매우 달라서 한국이라면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될 일도 프랑스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 때문인지 종종 맨홀에 빠진 기분이 든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싶은데,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이 들이닥치니 마음이 무겁고 불안하다.   

 

바뀐 환경을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다면, 사람은 결코 변할 수 없나 보다. 내 이야기다.

 

첫 한 달은 마트에서 물건 사는 것조차 하루의 큰 미션으로 여길 만큼 언어로 인한 고통에 시달렸다. 바보취급 당하는 게 자존심도 좀 상하고 그래서 눈물 몇 번 쏟고 나니, 조금은 무뎌진 기분이었다. 언어가 안 통하는 괴로움에서 무뎌지자 그간 잊고 있었던 걱정거리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 고민들은 나를 다시 한국으로 끌고 갔다.

 

삶을 다시 설계해보고자 뜻하는 바를 품고 이 곳에 왔으나, 내 머리는 여전히 한국에서부터 안고 온 걱정거리로 가득 차 있다. 실패해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가진 돈도 모두 떨어지고, 경력도 불충분하며, 나이만 많고 전문성은 없는 도태된 인간이 되어 사회의 언저리를 맴돌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내가 이곳에 오고자 했던 이유가 큰 사회적 성취를 얻고자 함이었던가? 도태되는 것이 그리 무서웠다면 한국에서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했어야 했다. 먼저 외국생활을 시작했던 많은 사람들이 누차 강조하는 그 ‘목적의식’이라는 게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었지 싶다.

 

한국을 떠난다고 해서 안고 있던 고민이 사라지거나 해결되지는 않았다. 잠시 가라앉아 있을 뿐. 내 목적의식이 흐릿해지는 순간, 그 고민들은 언제고 다시 떠올라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늘 같은 답만 강요하는 한국의 환경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었고, 그래도 내가 적응해서 잘 살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어느 브런치 작가님이 쓰신 캐나다 이민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와 다른 삶을 살려고 캐나다에 왔으면서 여전히 한국적 마인드에 갇혀 한국에서 인정받는 직장에서만 일하려 하고 3D업종 일은 하고 싶지 않아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한국인 이민자들을 종종 본다고 하셨다. 내가 그 이민자들과 별다를 바가 없구나 싶었다.

 

몇 개의 선택지 내에서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목적으로 온 내가 또다시 사회에서 도태될까 봐 걱정하다니. 나는 또 어떤 것을 보고 도태된 인간이라 감히 평가 내리고 다녔던 걸까.

 

나는 여전히 경제력은 이 정도쯤, 직업은 이 정도쯤 돼야 도태되지 않은 인간이라 생각하며 사나 보다. 그리고 그 기준이란 명날 친척들이 하는 조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걸 보니, 그냥 한국에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로 어떻게 해서든지 맞추며 살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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