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좀 늦으면 어때

뿌부부 202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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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준비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에서도 마음은 여전히 휘청거린다. 어느 날은 잘한 일이라 싶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이런 일을 벌였나 싶기도 하다. 또래의 동기들, 선후배들을 만날 때면 마음은 더 없이 아래로 곤두박질 친다. 동갑내기이지만 벌써 입사 5년차에 대리를 단 친구도 있고, 계속해서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을 하며 승승장구하는 친구도 있다. 그간 번 돈으로 내년에는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준비 중이라는 친구도 있고, 청약을 들어 집을 준비하고 차를 산 친구도 있다.

 

그들이 지금 누리는 것들은 거저 얻은 게 아니고, 그간 더럽고 아니꼬운 일에도 참고 인내해 온 결과이자 버젓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다한 결실이라 생각한다.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뛰쳐나온 내가 또래들이 얻은 결실만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무지무지 바보 같은 짓이리라. 그럼에도 자꾸 비교하게 되고, 흔들리고, 바닥으로 고개를 떨구게 된다. 내 또래 친구들은 훌훌 털고 떠나는 나를 용자라 여겨주지만, 나는 안다. 나는 버틸 용기가 없어서 떠나는 거다. 여기서 잘 살아낼 용기가 없어서 도망가는 거다. 나의 파랑새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어처구니 없는 환상만 믿고.

 

 

“좀 늦으면 어떠냐, 니들 먼저 가거라”

 

 

 

좀 늦으면 어떠냐, 니들 먼저 가거라. 그래. 어처구니 없는 환상을 믿고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면, 한번쯤은 그렇게 살아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로 인해 또래의 성취에 비해 부족하게 될 수도 있고, 삶의 단계라는 게 있다면 거기에 늦게 도달할 수도 있다. 누군가를 따라잡는다는 개념에 비춰본다면 아마 난 평생 또래들을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 사회적, 경제적 안정이라는 가치를 내려놓으면서 나는 여러 갈래의 오솔길에 들어선 셈이다. 오른쪽으로도 가보고, 왼쪽으로도 가보고, 땅도 보고, 하늘도 보면서 다시 어떤 가치를 쫓아 살 것인지부터 재설정 해야 하니 남들 보기에 늦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늦다는 건 목표가 하나고 길이 하나라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되지만, 난 이제 여러 갈림길에 들어섰으니 늦는다는 개념을 잠시 접어둬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난 앞으로도 한참을 헤매다가 돈도 시간도 왕창 까먹을 공산이 크고, 내 착실한 친구들은 그 사이에도 꾸준히 자기 자리를 넓혀가며 안정성을 찾아갈 공산이 크다. 내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은 언제고 약해진 마음을 틈 타 나를 불안하게 하겠지만, 그 덕분에 얻은 앞날에 감사한 마음이 훨씬 크니 그리 밑지는 장사는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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