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부모님과의 대면 그 후

뿌부부 202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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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일이라는 게 쉽지 않지?”

 

고향 집으로 내려오는 차 안, 아빠가 먼저 운을 뗐다.

다행히 부모님은 나의 퇴사에 대해 진작 알고 계신 터라, 퇴사소식까지 전해야 하는 부담감은 덜했다. 그럼에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어차피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건데, 망설일 건 또 뭐람. 그냥 말씀 드리자.

 

“아냐, 힘들어서 그만둔 건 아니고 유학 가려고 그만뒀어요.”

 

"아빠 돈 없다"

 

아빠 대답에 왠지 피식 웃음이 났다. 그 대답에 마음이 좀 편해졌고, 또 마음이 좀 아파왔다. 나이 먹고 공부하러 간다고 반대하시진 않겠구나 싶어 마음이 좀 놓였고, 공부하겠다는 자식 못 도와준다고 혹여 자책하실까 봐 마음이 아팠다. 내려 오는 차 안에서 아빠한테 짤막하게 내 유학 결심을 말씀 드렸고, 아빠는 집에 가서 엄마와 같이 상의해보자고 하셨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미주알고주알 대화하는 자식이 아니라 그런지, 대화만으로 내 계획과 결심을 다 이야기하기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이건 부모님과의 상의가 아니라, 내 결정에 대한 설득에 가까운 거라 대화보다 효과적인 수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집에 내려오기 전 동영상을 하나 촬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그 일을 위해 그 동안 어떻게 노력해왔는지, 유학 가서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 지, 왜 그 일이 필요한지, 재정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등 궁금해하실 만한 내용을 최대한 자세하게 담았다.

 

집에 도착해서 숨막히는(?) 동영상 셋팅작업을 끝내고, 세 식구가 나란히 앉아 동영상을 시청했다. 촬영 당사자인 나는 그 순간이 아찔할 만큼 민망했다. 보고 어떻게 반응하실 지 걱정도 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생각이 더 컸다. 두 분은 영상이 끝나도록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받아들이시는 데 시간이 필요하셨으리라.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부모님은 이것저것 사소한 질문을 하셨다. 숙소는 어떻게 구했는지, 프랑스 음식은 입에 맞는지, 현지에서는 어떻게 용돈벌이를 할 것인지 등등. ‘너 이제 안정적인 직장 잡고 결혼할 나이에 어쩌려고 그러냐, 절대 안 된다!’ 같이 내가 상상했던 드라마틱한 상황은 없었다. 말미에 좀 더 생각해보자고 하셨지만, 두 달 뒤 출발하는 편도티켓까지 끊은 걸 아시고는 반대해봤자 소용없겠구나 하시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담담하신 부모님을 보니, 내가 그간 부모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구나 싶기도 했다.

 

부모님의 생각을 전부 다 알 순 없지만, 그래도 딸이 하려는 일에 대해 들어보려 하셨고 알려고 하셨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반성도 했다. 나 그 동안 참 불친절한 딸이었구나 싶었다. 그간 내가 어떤 이름의 회사에서 어떤 직급으로 있다는 이야기만 드렸지,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일을 좋아하며 사는지 부모님께 알려드린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부모님이 자식을 이해할 기회를 모두 빼앗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 우리 딸 젊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 엄마아빠는 우리 딸 믿는다” 처럼 완벽한 지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부모자식간 서로를 좀 더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부모님도 가본 적 없는 길을 전적으로 지지해달라는 건 정말이지 내 욕심이었다. 부모님이 지지해주지 않으실까 봐 두려워하고 있을 게 아니라, 불안해 하실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는 데 집중했어야 했다. 유학을 가서도 내가 명심하고 지켜야 할 일이 하나 생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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