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올해 서른살로, 얼마 전 원래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로 이직을 하여 새로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도중에 좋은 남자친구를 만나, 요새는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몇 년 동안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있었는데, 한번쯤 스페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거였다.
"이대로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난 이제 스페인에서 살아 볼 기회가 없지 않을까?"
있다 하더라도, 그건 더 이상 혼자만의 일이 아니겠지. 친구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라서 한참을 우물쭈물거렸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이제야 자리잡기 시작한 직장을 뒤로 하고 스페인으로 떠나고 싶다는 친구에게 딱 일년 전 내 모습이 겹쳐졌다. 그 시절 내 다짐이 주변인들에게 이렇게 느껴졌겠구나 싶었다. 똑같은 시간을 지나온 나조차도 선뜻 "그래,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거 해봐" 라는 말이 영 안나왔다. 오히려 친구의 의지에 반하는 이야기를 했다. 너무 환상을 갖진 마라. 갈거면 그냥 아무 기대도 하지 말고 가라.
전화기 너머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한동안 생각했다. 그녀가 지금 어떤 심정일 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왜그랬니 이 못된 여자야. 그동안 대차게 비난받거나 무신경하게 지지해주는 반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받아보지 못했을텐데. 그래서 먼저 시도해 본 나한테만큼은 좋은 말을 듣고 싶었을텐데. 새로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주고 싶다면서, 정작 가까운 친구에게 상처나 주다니.
마음을 헤집어서 치졸한 변명거리 몇 가지를 찾아냈다. 환상을 품고 왔다가 너무 실망해버릴까봐, 다시 불안정 속으로 뛰어들어 얻는 것 없이 너무 고생만 할까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자리잡기 힘들까봐 등등. 적고 보니 더 치졸해 보인다. 난 그녀를 성인 대 성인으로 대한 게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어른이 아이를 대하듯 그렇게 여겼던 것 같다.
서른의 나이가 좋은 건 결정에 뒤따르는 책임에 대해 이해하는 나이라는 것이다. 그녀 자신도 선택으로 인해 책임져야 할 것들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변화를 선택했다면 그 마음을 존중했어야 했다.
늦은 새벽에 그녀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실은 여기 와서 배우고 느낀 것이 훨씬 많다고. 나에게 어울리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 계기, 멋있는 삶은 나이와 상관 없다는 것, 집 앞 공원이 디즈니랜드보다 더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의 가치, 낡은 자동차를 몰고 다녀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이 굉장히 에너지 넘친다는 사실. 와서 내가 깨달았던 많은 것들을 적어 보냈다. 실망했던 그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지길 바라며.
"30년의 세월이 주는 선물, 그것은 바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당신의 인생을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능동성이다. …그러면서도 서른 살은 아직 젊다. 20대의 활기와 정열이 여전히 넘쳐흐른다. 그래서 서른은 인생을 호기심과 열정으로 대할 수 있으면서도 좀 더 폭넓게 인생을 수용하기 시작하는 축복받은 나이이다." -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김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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