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리지

뿌부부 202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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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결심 후 내내 걱정했던 게 있는데, 바로 부모님께 말씀 드리는 일이었다.

 

부모님은 그간 감사하게도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별말 없이 응원하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셨다. 그러나 두 분도 내게 말을 안 하셔서 그렇지, 좁은 시골마을에서 들려오는 무성한 ‘카터라’ 통신에서 자유로울 순 없으셨을 테다. 누구 집 자식이 어느 대학을 갔다더라부터 시작된 정체불명의 카터라 통신은 자식들의 연령에 발맞춰 누가 어느 직장에 취직했다더라, 연봉을 얼마를 받는다더라, 시집을 잘 갔다더라 등등 끝 없는 버전을 선보인다. 우리 부모님도 그런 소식들 틈에서 한번쯤은 마음껏 자식 자랑을 하고 싶으셨을거다. 그런데 부모님 눈에 과년한 여식이 진로도 불분명한 전공을 공부하겠답시고 직장도 때려치우고 유학을 간다니 얼마나 답답할 노릇이겠는가. 한참 안정을 바라볼 나이에 직장도 결혼도 다 뒷전으로 미뤄버린 딸의 결정을 지지해주실까.

 

부모님이 그 동안 나를 지지해주셨던 건 어쩌면 내가 부모님의 기대치에서 크게 벗어나는 선택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간의 선택과 달리 안정적인 궤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나를 여전히 믿고 지지해주실지 걱정이 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부모님이 말린다고 한들 난 이미 편도행 티켓을 끊어버렸는걸. 그렇게 마음 먹고 나자, 내가 할 일이 명확해졌다. 유학의 의미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부모님께 설명 드리자.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그 일을 위해서 그 동안 어떻게 준비해왔고, 그 일을 위해 유학이 왜 필요하며, 가서는 무엇을 배울 계획이고, 재정 문제는 어떻게 해결 할 것인지 최대한 자세하게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과 계획을 들으시고서 나를 응원해주실지, 반대하실지는 전적으로 부모님 마음이다. 응원해주신다면 신나는 일이고, 반대하신다면 슬프긴 하겠지만 좌절하진 않으려고 한다. 그건 내 영역 밖의 일이니까.

 

이렇게 마음먹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모님이 역정내면서 반대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며칠 잠을 못 자기도 했다. 잠 안 오는 밤이면, 나의 정신적 길잡이인 브런치에서 여러 글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어느 작가 분이 아는 스님으로부터 들은 조언을 적어두신 걸 보고 ‘이거다!’ 싶었다. 내게 지금 필요한 마음가짐.

 

“부모님은 힘들게 나를 낳아 길러주셨으니, 나의 인생에 관여하실 권리가 있다.
나는 그런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릴 의무가 있다.
그러나 뒤돌아서면 내 마음대로 할 자유도 있다.”  

- 어느 브런치 작가 분의 아는 스님 曰-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설명 드리려고 한다. 그리고 그 끝의 결과가 좋지 않다하더라도 부모님을 원망하지도, 나를 절망하게 놔두지도 않을 거다. 그래도 부모님을 사랑하고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할거다. 동시에 나를 사랑하고 내 의견도 존중할거다.  

 

내 세계를 세우려면 언젠가는 부모님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단순히 경제적 독립만을 의미하거나,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는 것과는 다르다. 내 세계란 물리적인 독립 그 이상의 마음의 독립을 의미한다. 부모님의 세계는 존중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도록 정신적인 균형을 잡는 것.   

 

꼬박 서른을 코 앞에 두고서야 그런 연습을 처음으로 하는 거라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짜 독립적 개체로서의 ‘어른’이 되는 거고, 그런 어른이 되어야만 자기 가정, 자기 삶을 제대로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학 한번 가는 거 가지고 뭘 이렇게까지 큰 의미부여를 하나 의아해 할 지도 모르겠다. 근데 나에게는 이게 물리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독립까지도 함께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 지금 엄청 비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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