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65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리지 유학 결심 후 내내 걱정했던 게 있는데, 바로 부모님께 말씀 드리는 일이었다. 부모님은 그간 감사하게도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별말 없이 응원하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셨다. 그러나 두 분도 내게 말을 안 하셔서 그렇지, 좁은 시골마을에서 들려오는 무성한 ‘카터라’ 통신에서 자유로울 순 없으셨을 테다. 누구 집 자식이 어느 대학을 갔다더라부터 시작된 정체불명의 카터라 통신은 자식들의 연령에 발맞춰 누가 어느 직장에 취직했다더라, 연봉을 얼마를 받는다더라, 시집을 잘 갔다더라 등등 끝 없는 버전을 선보인다. 우리 부모님도 그런 소식들 틈에서 한번쯤은 마음껏 자식 자랑을 하고 싶으셨을거다. 그런데 부모님 눈에 과년한 여식이 진로도 불분명한 전공을 공부하겠답시고 직장도 때려치우고 유학을 간다니 얼마나 답답할 노릇..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1. 15. 비자 면접을 보고 기분이 나빴다 프랑스 학생비자를 취득하려면 프랑스 문화원에서 면접을 봐야 한다. 인터넷 상에 떠도는 괴소문(?)에 따르면 면접관 운이 매우 중요한데, 친절한 면접관부터 인신공격을 일삼는 면접관까지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프랑스 유학 커뮤니티에서는 악명 높은 면접관이 있는 방을 공포의 3번 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면접 전까지 그런 분위기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면접실에 들어갔다가 문자 그대로 기분 나쁜 상태로 나왔다. 친구의 따끔한 조언(유학을 떠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 편 참고)이후로,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있는데 바로 내 자신이 기분 나빠하고 있을 때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나중에라도 감정을 걷어내고 상황을 찬찬히 되짚어보려고 한다. 내 기분이 나쁘다는 건, 내가 지금 뭔가 불..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1. 15. 무모하게 가는 건 나도 싫어 나도 무모하게 가는 건 싫었다. 그건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었다. 다녀와서 정확하게 어디서 뭘 할 건지 세세한 수준까지 계획을 세울 순 없었지만(그럴려고 하다가 4년을 못 갔다) 왜 가고 싶은지 가서 어떤 것을 공부하고 어떤 것을 얻으려고 하는지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건지 정도는 계획이 있어야 했다. 나는 그간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했고, 앞으로도 이와 맞닿아 있는 일에 뜻이 있기 때문에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이 분야에서 영어 다음으로 수요가 많은 불어를 배워놓고도 싶었다. 나도 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계획이라는 거. 그래도 큰 줄기를 세운 것만으로도 예전에 비해 마음이 든든했다. 더 이상 주저 말고 일단 하는 게 더 중요했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하다 보면 방법을 찾게 된다는 걸 배운 후..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1. 15. 누군가 나를 지지해주길 바랬다 선택하기에 앞서 나도 모르게 부모님, 동생, 친구, 친척들, 상사 등등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내 선택을 지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괴롭힌 사람은 동생이었다. 동생한테 ‘나 가도 될까?’ 하고 수백 번 넘게 물어봤다. 양치 하다가 갑자기, 물 마시다가 갑자기, TV 보다가 갑자기. 하루 종일 숨쉬듯이 동생한테 물어봤다. 동생은 늘 그렇듯 미쳤냐고 했다. 실은 아무 의미 없었다. 동생이 가라고 해서 갈 것도 아니고, 동생이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갈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듣고 싶었다. 가도 된다는 말이. 무의미한 대답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으니까. 남들의 동의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니. 이건 또 뭔가. 유학 준비하면서 또다른 내 모습을 발견해버리고 말았다. ..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1. 15. 불안을 떨치기 위해 했던 일들 오랜 고민 끝에 외국생활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게 많았다. 부모님을 잘 설득해야 되는 데 반대하시면 어쩌나, 문제 없이 비자를 받을 수는 있을까, 출국 전에 갑자기 큰 문제가 생기거나 하지 않겠지, 가서 잘 적응해서 살 수 있을까,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실패해서 돌아오면 어쩌지, 돌아와서 결국 일자리도 못 찾고 돈과 시간만 까먹은 거면 어쩌나. 밤을 새도 모자랄 만큼 불안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래서 불안을 떨치기 위해서 매일 책방에 들렀다. 가까운 주변에 나와 같은 상황을 겪어본 사람들이 없어서 조언을 구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쓴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워홀이든 세계여행이든 삶의 방향을 바꿔본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무슨 책이든 읽었다. 너무 고마웠다..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1. 15. 새로 시도하기에 좋은 나이 나는 유독 나이에 대한 걱정이 많은 편이다. 내가 유별 난 건지, 나이에 민감하게 구는 사회에 물든 건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을 하건 나이를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다. 처음 해외로 나가 살겠다 결심했을 때, 나는 24살이었다. 그 때도 스스로 나이가 너무 많다며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이제 보니 살짝 병인 것 같기도. 28살인 지금도 여전히 뭔가를 하기에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내 분야도 없고, 내세울 경력도 없고, 신입으로 입사하기에도 늦은 나이. 사석에서 나이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을 털어 놓으니, 올해 서른에 접어든 언니가 그랬다. “너 참 새로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엥? 겨우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놀라웠다. 각자의 나이에 씌워진 프레임이라는 게..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1. 15. 내가 결심하니 온 우주가 가라고 등떠밀었다 마음먹기의 차이 인걸까. 유학을 결심한 지 하루 만에 유학원을 방문하여 상담을 받고, 어학원 등록 절차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어학원 등록이 완료되었고, 이주일 후 비자 서류가 통과되었다. 언어교환 어플을 통해 알게 된 프랑스인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성의껏 불어 면접을 도와줬다. 가벼운 마음으로 항공권 스케줄을 알아보다가 보너스좌석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이로써 출국일자까지 정해졌다. 모든 절차들이 너무 손쉽게, 또 운 좋게 잘 풀려나갔다. 이래도 되나 걱정될 만큼. 마치 온 우주가 나서서 가라고 등 떠미는 느낌이었다. 유학을 고민하던 시절과 유학을 준비하는 지금, 그 사이에 내가 한 거라곤 유학을 결심한 일뿐이었다. 결심하기 전에도 나는 매일같이 ..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1. 15. 시작하려면 완벽한 준비가 필요해 대학 졸업 이후로 줄곧 해외취업, 유학, 이민, 워킹홀리데이 등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엿보고만 있었다. 장장 4년을. 그 긴 시간 동안 나를 떠나지 못하게 했던 이유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공부할 전공분야가 전망이 있을 지 확신이 없고, 영어도 부족한 것 같고, 돈도 좀 모아야 할 것 같고, 어느 나라가 좋을 지 잘 모르겠고, 돌아와서 자리 잡으려면 경력도 좀 쌓아놓고 나가야 할 것 같고, 집에서 반대하실 것 같고, 내가 나가면 동생은 혼자 살아야 되는데 걱정도 되고 등등. 적고 보니, 난 지난 4년 간 말로만 나가고 싶다고 했지 정작 나갈 생각은 없었나 보다. 시작하려면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조건들이 갖춰지길 기다렸다. 언어도 완벽하고, 경력도 충..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1. 15. 떠나기로 결심하게 만든 계기 앞선 프롤로그에서도 말했지만, 난 주변 소리에 꽤나 많이 흔들리는 사람이다. 아마 나를 아는 친구들은 웃기지 말라며, 너처럼 남의 말 안 듣는 애 없다며 황당해 하겠지만, 사실이다. 겉으로는 잘난 척 하면서 내가 알아서 한다고 신경 끄라 하지만 가까운 지인들이 하는 말에 엄청 오락가락한다. 그런 내가 친구들에게 몇 년째 반복적으로 해온 이야기가 유학에 관한 거였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 내 꿈은 회사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돈도 없고 준비도 부족하다 등등 유학 이야기는 회사에 대한 불만과 만나 폭발적인 변주를 보였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떠난 여행지에서도 나는 여전히 똑같은 한탄만 반복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정색하면서 그랬다. "너 이런 식으로 살다가 나중에 40, 50살 ..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1. 15. 사회학의 가치2 (feat. 라이트 밀스) 요새 쏟아져 나오는 사회과학 논문들을 보다보면,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할 거 없이 질적연구 논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구글 스칼라에서 최근 5년간의 논문 중 인용지수가 높은 논문들을 보면 대부분이 양적연구다. 그러다보니 특이할 만한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이슈가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죄다 비슷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기계적으로 논문을 찍어낸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사실 사회과학 뿐만 아니고 이공계에서도 자주 보이는 현상인데,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니라 기술적인 정교함에 중점을 두는 경향을 말한다. 그러니까 과학(Science)이 아니라 엔지니어링(Engineering)을 하는 거다. 요즘의 사회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 가다 보면, 도대체가 이 논문이.. 프로젝트/정박사의 인구학 2022. 12. 18. 사회학의 쓸모에 대해서 (feat. 피에르 부르디외) “정치가들은 사회세계에 대한 진리를 인식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선동의 합리적 도구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에 부여되어 있으며, 사회학만이 수행할 수 있는 책무들 중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 중의 하나는, 이렇게 사악한 방식으로 학문을 활용하여 시민과 소비자를 조작하고 기만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와해시키는 것입니다. 시장의 강제력에 대해 유일한 자유를 표상하는 국가가, 자신에게 고유한 행위와 (특히 문화, 학문, 문학에 관한) 업무를, 마케팅 조사, 여론조사, 시청률 조사, 그리고 최대 다수의 추정된 기대에 대한 믿을만하다고 추정된 모든 기록들의 독재에 점점 더 종속시키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불안을 느낍니다. 사회학은, 자신들의 제국을 현실화시키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과학(진짜 과학이건 과학으로 .. 프로젝트/정박사의 인구학 2022. 11. 18. 한국은 엄살을 잘 부리는 나라? (ft. 자살률, 우울증 통계) 불금인데 이런 꿀꿀한 통계를 보니 오늘은 도저히 이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겠다. 바로 시작! 2021년도 OECD에서 발간한 Health at a Glance는 OECD 각국의 국가통계를 합쳐서 건강에 관련된 모든 주요 파트에 대해 통계분석을 제공한다. 그래서 공중보건, 인구학 파트에서 단일국가연구 뿐만 아니라 국제비교연구를 수행할 때도 매우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2021년도에 발간된 자료지만, 분석에 쓰인 자료를 보니 한국은 2018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썼다. 그러니 아마 조사분석에 쓰인 기간을 고려해보면 지금으로부터 못해도 5년 전은 지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자료겠다. 그러니까 이 보고서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통계자료들은 코로나 전에 집계된 자료들이니, 결과값이 코로나랑 무관하다는 걸.. 프로젝트/정박사의 인구학 2022. 9. 30.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