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42 해외유학 박사 1년차 후기 연구실 동료들이랑 자주 하는 농담으로 논문을 마이 베이비라고 한다. 팔 하나 없고, 눈도 없고, 입도 비뚤어졌지만 마이 베이비. 박사를 시작한 지 1년 하고도 5개월이 흘러,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박사 2년차 중반에 접어들었다. 2년차 중반이면 3년차에 올라가기 위해 커미티 회의에서의 평가를 거쳐야 한다. 그게 5월에 예정되어 있다. 1년차 때랑 별반 크게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벌써 3년차 올라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니 어이가 없네. 그동안 도대체 뭐했나 싶다. 최근 연구윤리심의 때문에 크게 엎어진 김에, 지난 박사 1년차 때를 한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1년차 때 나를 가장 괴롭히던 것은 연구주제를 잡는 문제였는데, 교수나 연구팀에서 진행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소속되지 않는 이상 개인 연구주제를..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7. 15. 박사를 시작하며 프랑스로 돌아와 박사를 시작하게 된지도 어느덧 3개월이 되어간다. 떠날 때는 언제고 다시는 못 올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돌아와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으니 마음이 새롭고 벅차다. 연구소에 내 자리가 생기고, 사이트에 나의 이름이 올라가고, 같이 연구생활을 나누는 동료들이 생기고, 내 박사 연구를 나의 연구라 인정해주는 교수들과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게 전부 꿈 같다. 박사를 입학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내게 주어진 기회가 참 커보인다. 석사 졸업 후 붕 떠버린 시간에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서 일도 함께 병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는 내가 이런 타계책을 찾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뜻하지 않게 실패하듯, 뜻하지 않게 이루어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마음을 잘 다스리라는 말은..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4. 10. 지극히 정성을 다하기 6개월 즈음 지난 시점에서 돌아보니, 박사 펀딩을 따기 위해 마지막 인터뷰를 앞두고 지극히도 정성을 다했던 기억만 떠오른다. 불합격 통지를 받고 대성통곡하며 무너져 내렸던 순간이나, 이후 다시 회복기를 거쳐, 결국 박사에 합격하여 학업을 이어가게 된, 이후의 결과에 해당되는 시간들은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한 달여를 인터뷰 PT를 준비하고, 교수들과 함께 여러 차례 예행연습을 하고, 며칠 밤을 꼬박 지새우며 스크립트를 외워대던 시간만 떠오른다. 작은 방에서 하루 종일 혼자 중얼대며 보내던 그 과정들이, 하나에 미친 사람처럼 참 지극히도 정성을 다했던 순간들이었다. 나의 그런 노력에는 반드시 정당한 결과가 따라와야 되지 않겠느냐는 보상심리가 들었었고, 그 때문에 불합격 통보가 그리도 괴로웠었다. 석사를..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4. 10. 낙관주의를 세우기 "스위스로 떠나기 바로 전날, 마지막으로 원고를 보낸 뉴욕의 출판사로부터 내 소설을 출간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절망에 갇혀 있었고, 중대한 위기국면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었다. 그 당시 내 나이 45세, 중년이 된 지 5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삶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고,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인생에서 배우게 되는 여러 가지 교훈들 중 비로소 한 가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망, 낙심, 비극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 절망, 낙심, 비극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커다란 시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4. 10. 실패에 박수를 친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무한도전 팀이 스포츠 중계를 하는 편을 돌려봤다. 남성부 체조 경기에서 러시아 선수가 실수로 넘어져서 크게 다칠 뻔했다. 선수는 다시 털고 일어나서 원래 하려던 동작을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마무리했다. 놀랍게도 베이징 주경기장을 채운 관중석에서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던 자국 선수에게 쏟아진 박수보다 더 큰 박수가 쏟아졌다. 해설을 보던 캐스터들도, 유재석 MC도 선수가 다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장면을 보고 너무 다행이라고, 이게 바로 스포츠 정신이라고 치하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의 시간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 역시 그 선수가 다치지 않기를 바랐고, 다시 일어나서 끝을 내는 모습에 혼자 박수를 쳤다. 비록 그 선수는 순위권 안에 들지 못했지만, 시상식이 끝나는 마지..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4. 10. 노력을 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준비했던 모든 박사과정 펀딩에서 떨어졌다. 나름 나이가 먹었다고, 20대 중반에 겪었던 크고 작은 실패들보다 덜 슬프고, 재빨리 이겨내는 것 같다. 거짓말이다. 이겨낸 척 한다. 나이가 먹어서 괜찮은 척 자신을 속이는 기술만 늘어난 것 같다. 사실은 하나도 안 괜찮다. 건드리면 눈물이 뚝뚝 나는 상처가 하나 또 생겨버렸다. 괜히 시도를 했다. 괜히 시도를 해서 또 나 스스로에게 상처만 주는 일을 만들었구나. 그런 맥빠지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다. 최선을 다해도 안되는 일을 받아들이기란 정말 고통스럽다. 그저 괜찮은 척 덮어두고 살 뿐이지,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결국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로 들린다. 어릴 적부터 늘 '최선을 다하면 언젠간..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4. 10. 발표, 면접 울렁증 적응기 (프랑스 박사과정 오디션) 오늘 석사에서 박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박사펀딩 면접이 있었다. 면접일자가 결정되고 난 이후부터 나는 매일, 매분, 매초 도망치고 싶었다. 그냥 포기하고 면접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경우의 수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너무 도망치고 싶어서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서 억지로 잠들어버리기도 하고, 왕창 술을 마셔서 그냥 다음 날 멍청하게 하루 종일 누워있기도 했다. 난 정말로 발표, 면접을 혐오하고 싫어한다. 정말 피할 수 있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피하고 싶다. 초중고까지만 해도 늘 앞장서서 손들고 발표하고 연단에 서는 것도 즐겨하던 나였는데, 대학시절 겪었던 트라우마틱한 경험 이후로 10년 가까이 발표 울렁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자신의 트라우마의 시작점을 찾아내고 대면해보면 ..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4. 10. 프랑스에서 석사과정을 끝내며 (2021년 시점 이야기 입니다) 작년 9월, 석사 2년차를 시작하면서부터 준비해왔던 졸업논문을 이번 달 초에 들어서 제출하고, 며칠 전 디펜스까지 끝냈다. 박사 펀딩을 위한 연구계획서를 준비하면서 논문까지 써내느라 막판에는 그냥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박사 지원도 중요하지만 논문이 통과가 되지 않는다면, 겨우 준비한 연구계획서도 아무 의미 없게 되버리니 둘 다 중요하고, 둘 다 높은 퀄리티로 해내야 한다는 게 너무 부담스럽고 스트레스 받았다. 그래도 제발 제발 포기만 하지말자고 다독이면서 억지로 내 멱살을 잡고 마무리 했다. 유의미한 분석과 결론을 생산해내는 정신작업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육체작업이 더 힘들었다. 나중에는 30분만 앉아있..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4. 10. 박사 스트레스 - 연구윤리심의(IRB) 스트레스 IRB라는 게 있다. 연구 시작 전에 연구윤리를 심의받는 과정이다. 허울은 얼마나 좋은가. 연구대상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연구윤리를 심사한다니. 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작업인가. 근데 문제는 이 연구윤리심의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복불복, 나만 아니면 돼~~~ 라는 거다. 최근 IRB 검토에서 사실상 연구불가 판정을 받았다. 15개의 날선 코멘트를 받았는데, 일견 건설적인 비판도 있었으나, 동의되지 않는 부분이 훨씬 많았다. IRB를 통과했던 동료들의 서류와 정부에서 진행하는 대형프로젝트의 IRB 서류를 참고하여 작성(심지어 동일한 방법론을 적용)하였는데도 통과된 서류들에서 문제시 되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모두 문제시하더라. 이는 IRB 본인들 스스로가 얼마나 제대로 된 기준이..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4. 8. 논문도, 일단 시작하고 보기 프랑스 대학들은 석사로 입학하면 2년코스로 한번에 입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석사 1년차(M1)와 석사 2년차(M2) 입학을 별도로 진행한다. 따라서 석사 1년차에 일정 학점 이상을 취득하지 못하거나 논문심사에 통과하지 못하면 석사 2년차에 입학하지 못한다. 또한 A학교에서 석사 1년차를 졸업했지만, 석사 2년차는 B학교에서 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시스템 때문에 석사 1년차부터 졸업논문을 진행해야 한다. 9월 입학해서 이듬해 6월 초까지 논문을 제출해야하니 사실상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에 100페이지 가량의 논문을 작성해야 하는 것이다. 논문을 써 본 연구자들이라면 아마 이 같은 논문일정이 연구내용의 깊이보다는 연구자로서의 자세를 평가하기 위한 과정임을 단번에 파악했을 지도 모르겠다. 연구주제..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3. 2. 끈기를 기르는 방법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싫어하는 일도 참고 할 줄 알아야 한다. 책에서, SNS에서, 친구 입을 통해 여기저기서 자주 들었던 말이다. 좋아하는 일조차 꾸준히 할 줄 모르는 나에게는 어지간히 입에 쓴 말이기도 하다. 싫어하는 일을 참고 할 줄 알게 되면, 좋아하는 일은 더 꾸준히 잘하게 되지 않을까? 일단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에선 실패(...)했으니, 순서를 바꿔서 싫어하는 일을 먼저 꾸준히 해보기로 했다. 내가 단연 싫어하는 일 중 하나는 달리기다. 수영, 요가, 합기도, 특공무술 등 별별 운동을 다 해봤지만 조깅만큼은 절대 하고싶지 않은 운동 중 하나였다. 그래서 3km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뛰기로 결심했다. 첫째 날, 의지를 아득바득 다진 날이라서 몸은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다. 난..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3. 2. 돈도, 배경도, 운을 이기지는 못한다 남자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는 늘 운이 좋았다. 본인도 운이 좋은 편인 것 같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는 학부시절 학교에서 제공하는 특수한 복수학위과정에 합격해서 운 좋게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게 되었다. 또 그는 운 좋게 아이비리그 스펙으로도 합격하기 힘들다는 장학금을 받아 남들은 빚져가며 하는 유학에서 오히려 몇 천 가까운 돈을 모으며 경제적 채비를 하고 있다. 요새 그는 하던 실험에서 우연찮게 전례 없는 발견을 하게 되어 좋은 저널에 투고할 논문을 준비 중이다. 이런 굵직굵직한 일뿐만이 아니다. 사소한 일상에서도 그는 늘 운이 좋다. 운 좋게 저렴한 값에 더 큰 방을 구하게 되기도 하고, 운 좋게 중고제품을 후한 값으로 처분하기도 하며, 운 좋게 소규모 학회에서 .. 프로젝트/프랑스 유학기 출간 2023. 3. 2. 이전 1 2 3 4 다음